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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형법 제92조의6 폐지, 합리적 논의의 장이 열려야

군형법 제92조의6 폐지, 합리적 논의의 장이 열려

글_한가람

한국사회에서 가장 비합리적인 논의가 오가는 주제가 무엇일까요? 곰곰 생각해 보면 ‘군대’와 ‘동성애’만큼 합리적인 이야기가 어려운 이슈는 많지 않은 듯합니다. 그런데 그 ‘군대’와 ‘동성애’가 결합한 논의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입니다.

지난 3월 17일, 역사상 처음으로 군형법 제92조의6폐지안이 국회에 발의되었습니다. 이미 남인순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른바 ‘계간죄’를 ‘비동의추행’으로 개정하는 안이 계류중이기는 하지만, 명시적으로 이렇게 폐지를 주장한 것은 처음입니다. 1962년 제정된 군형법에서부터 존재한 ‘계간죄’의 폐지 논의가 19대 국회에 와서야 처음으로 논의되는 것 자체가 합리적인 논의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관련기사: 군대 내 동성애 처벌하는 ‘군형법 92조6’ 폐지안 발의  

댓글을 보면 얼마나 이 조항에 대해서 비합리적인 말들이 넘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댓글 수준과 공적 논의의 수준이 다른 경우도 많지만, 사실 군형법 제92조의6과 관련해서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군형법 제92조의6은 군인 또는 준군인에 대하여 항문성교나 그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는 내용을 담은 조항입니다. 과거에는 군형법 제92조로, 계간 기타 추행을 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아니, 추행은 처벌해야지, 이게 웬 말이냐? 라고 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조문을 자세히 보시면 ‘강제’라는 말이 빠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이 조항은 ‘계간 기타 추행’이라고 하면서 ‘남성간 성적 접촉’을 ‘추행’ 즉 ‘추한 행위’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법원은 이 조항에서의 추행을 ‘계간(항문성교)에 이르지 아니한 동성애 성행위 등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성적 만족 행위’라고 해석하게 됩니다(대법원 2008. 5. 29. 선고 2008도2222 판결). 결국 여기서는, 동성애는 ‘객관적으로 혐오감’을 일으키면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것으로서, ‘동성애=추행’이라는 도식이 성립하는 것입니다. 


구 군형법 제92조는 두 번이나 헌법재판소에 올라간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두 번 다 합헌결정이 내려졌지요.

결정문 내용이 좀 어려워요. 재판관님들도 중간에 성폭력과 섹스를 혼동하시기도 한 것 같아요.

사진은 군형법 제92조 위헌결정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하며 연 2009년 기자회견 사진.

사실 과거에는 성폭력 사건에도 이 조항이 적용되었습니다. 성폭력범죄가 친고죄(고소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는 범죄)이다 보니 가해자와 피해자가 합의하여 고소를 취하한 경우에는 처벌할 수 없었는데, 그 경우에 친고죄가 아닌 이 조항을 적용해서 처벌을 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지금은 성폭력범죄가 비친고죄화되어 성폭력의 경우는 성폭력 관련 조항으로 처벌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성폭력 가해자’ 처벌을 위한 조항으로의 쓰임은 사라지고, ‘섹스한 쌍방’을 처벌하기 위한 조항으로만 사용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조항이 폐지되면 합의인지 강제인지 모호한 군대 내 성폭력을 처벌하지 못한다고 말하는데, ‘피해자’인 상대방까지 처벌하는 것은 여러모로 이상하지 않나요? 


그런데 이러다 보니 문제는, 실제로 ‘피해자’까지 처벌하는 일이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현실에서는 성폭력을 ‘합의에 의한 것’으로 해석하게 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는 것이지요. 군인 A가 군인 B에게 성폭력을 가하였는데, 가해자가 피해자 B 역시 ‘즐겼다’라고 주장하거나, 수사기관에서 ‘너도 즐긴 거 아니냐’면서 이 조항으로 A와 B를 함께 처벌하게 되는 것이지요. 특히 피해자가 동성애자인 경우에 이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군대에서는 남성 동성애자가 성폭력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피해자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성적 만족’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쌍방처벌을 하게 되는 기묘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뭔가 군형법 제92조의6을 폐지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바로 납득이 안 되신다면, 아래 링크도 한 번 봐주세요. 저희가 마련한 군형법 제92조의6 폐지에 관한 10문 10답입니다.


군형법 제92조의6 폐지 10문 10답

군형법 제92조의6이 동성애를 범죄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폐지해야 한다는 것은 마땅하지만, 역시 아직도 그 내용과 의미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논의가 되고 있지는 못합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앞서 말한 것처럼 ‘추행’이라는 성폭력에 쓰이는 용어를 동성애에도 갖다 붙이기 때문인데요, 여기서 뿌리 깊은 성폭력과 동성애에 대한 오해가 작용한다는 것을 읽을 수도 있습니다. 즉 ‘남성 동성애=무언가 위험한 것=규제해야 하는 성(=성폭력)’이라는 도식이 묘하게 작동합니다. 이런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군대 내에서 남성 동성애를 처벌하는 조항이 사라지면 남성간 성폭력이 횡행할 것이고, 심지어 동성애가 ‘전염’될 것이라는 생각까지 이르게 됩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구 군형법 제92조에 대한 위헌의견을 내기로 결정하자 국가인권위에 난입한 사람들. 

‘나라 지키러 군대 간 내 아들, 동성애자 되고 AIDS 걸려 돌아오나’라는 구호는 어쩔… 

최소한의 합리성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군형법 제92조의6을 둘러싼 관념과 법적 논의는 끝도 없이 할 수 있는데요, 이 군형법 제92조의6을 둘러싼 이야기는 군인이든, 동성애자든, 우리 사회가 ‘사람’과 ‘성’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는 잘 보여주는 텍스트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결국 인권에 대한 인식이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조항을 가지고 다방면의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지요. 저는 이 조항의 폐지에 반대하는 논의들이 성에 대한 공포, 국가안보라는 말 앞에 말문이 막히는 현실, 동성애에 대한 두려움 이런 것들을 보기도 합니다.

 

문화연대 소식지 <문화빵> 17호, <군형법, “섹스해도 괜찮다”>

이런 공포와 두려움을 넘어야 합리적인 논의의 장이 열립니다. 아니, 합리적인 논의의 장이 열려야 이러한 공포와 두려움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막연하게 무조건 반대를 외치기보다는, 정말로 ‘나라 지키러 간 내 아들’을 걱정하고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모든 군인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쉬쉬할 뿐인 군대 내 성폭력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결국 고민하는 것은 군대에서의 인권보장을 추구하는 것일 테니까요.

희망법은 <군 관련 성소수자 인권침해.차별 신고 및 지원을 네트워크>에 참여하여 군형법 제92조의6 폐지와 군 관련 성소수자 인권침해와 차별을 방지하기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 활동은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 사회의 성에 대한 인식, 그리고 군대와  군 인권을 둘러싼 공포나 편협한 관념과 싸우는 일이기도 합니다. 합리적인 논의의 장을 열고, 군대와 관련한 인권, 성소수자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 활동하겠습니다. 여기에 많은 분들의 동참이 필요한 것은 물론입니다. 우리의 공포와 두려움을 이야기 나눠 보아요. 인권은, 공포와 두려움을 이야기하고 넘어서면서 만들어집니다.

 

글_한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