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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시급 4980원, 육두문자는 기본”…카메라 뒤의 비정규직들

“촬영이 시작되면 하루 평균 20시간은 일한다. 연속 40시간 가까이 일한 적도 있다. 커피 없이는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프리랜서 촬영스태프 ㄱ씨)

“폭언 때문에 그만 둔 후배가 있다. 소도구팀에서 15년 일하다가 결국 새벽 4시에 자살한 분도 봤다. 그럴때면 ‘사람들이 뭘 하겠다고 이렇게까지 하지’라는 생각이 든다.”(조연출 ㄴ씨)

살인적인 업무량, 밥먹듯 날아오는 폭언. 시청자들을 위로하는 드라마 뒤에는 다단계 하청구조가 빚어낸 어두운 노동이 웅크리고 있었다. 20일 오전 국회에서는 ‘카메라 뒤에 사람이 있다-드라마 제작현장의 노동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지난해 10월 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이한빛 PD가 목숨을 끊은 뒤 꾸려진 사망사건대책위원회가 넉 달 동안 드라마 제작 노동자 13명을 상대로 심층인터뷰를 한 결과가 이날 공개됐다.

“너무 많이 일한다”는 하소연이 제일 많았다. 제작기간이 촉박하니 밤샘 촬영을 밥먹듯 한다고 했다. ㄴ씨는 “드라마가 시작되면 메인 PD는 주 7일 하루 15시간 정도 일한다. 막내는 18~19시간 일하는 게 보통이다. 쉬는 시간이라기보다는 이동하면서 자는 거다”라고 말했다. 밤 늦게 일이 끝나도 차비가 없어 찜질방에서 자거나, 장비차량을 졸음운전하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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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실은 방송업계의 외주제작 시스템 탓이 크다. 1990년대 후반 구조조정을 겪은 방송사들은 대부분의 드라마를 외주로 제작한다. 방송사에서 일감을 따온 제작사가 미술, 소품, 촬영, 조명을 맡을 인력을 고용한다. 7년차 프리랜서 ㄷ씨는 “촬영감독이 자신의 임금을 뺀 나머지를 나눠주는데, 감독이 무슨 장비를 쓰고 싶다고 하면 조수들의 페이를 깎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근로계약서를 쓰는 경우는 드물다. 한 1년차 프리랜서는 “임금도 제작사에서 내려준다. 협상은 없다. 주는 만큼만 받는다”라고 했다.

스태프 개개인의 고용형태는 프리랜서, 계약직, 파견, 용역 등으로 복잡하다. 프리랜서는 ‘자영업자’로 분류돼 근로기준법의 보호도 받을 수 없고, 방송사와 제작사의 ‘갑질’에도 무력하다. 프리랜서 조연출 ㄹ씨는 “정규직 조연출들은 프로그램 하나 끝내면 한두 달 휴가를 가지만 계약직과 프리랜서는 그럴 수 없다”라며 “프로그램 배정권을 가진 방송사에서 ‘이 프로 안하면 다음에 배정 안 해준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고 했다.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재충전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대책위는 “원청(방송사)이 드라마에 투입되는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환경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최단시간 내 최대 효율’을 추구하는 시스템 속에 권위적인 분위기가 당연한 것처럼 자리잡았다. 폭언, 욕설이 비일비재했다. 한 프리랜서는 “조연출이 실수를 하자 모든 스태프들이 듣는 무전기를 통해 야 이 XXX야! 라고 소리쳤다”라며 “현장에서 육두문자는 기본”이라고 했다. 감독이나 중견 배우들의 성추행도 잦다. 외주제작사 직원 ㅁ씨는 “현장에 몇 안 되는 여성 직원들에게 ‘들이대는’ 것이 심하다”라고 말했다. 일을 못한다며 폭행하거나 PD들이 스태프를 ‘5분대기조’처럼 부리며 개인 심부름을 시킨다는 증언도 나왔다.

방송 종사자들의 ‘열정’은 이런 대우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됐다. 대책위는 “꿈이 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구조에서 당사자가 버틸 수 있지만, 한편으론 관행이 당연시 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구조를 빚어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보고서 제작에 참가한 ‘희망을만드는법’의 김동현 변호사는 “방송업을 근로시간 특례업종으로 지정한 근로기준법 59조부터 폐지해야 한다”라며 “‘드라마 제작현장 노동인권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스태프들의 권리구제 기구도 결성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상범 기자 ksb123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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