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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항소 포기, 그러나 재판은 계속 될 것입니다.

이 글은 7월 6일 판결 이후 발표된 민변의 논평과 <유서대필조작사건 국가배상 공동대리인단>(법무법인 지향 변호사 백승헌,김묘희/ 변호사 송상교/변호사 서선영/ 변호사 최현정/ 변호사 이주언)의 보도자료를 재편집한 입니다.

24년만의 무죄. 그러나 가해자 중 누구도 책임을 인정하거나 사과를 하지 않았습니다.

 

강기훈 씨는 유서를 대필하여 동료인 김기설 씨의 자살을 방조하였다는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뒤 24년이 지난 2015년에 대법원으로부터 무죄확정판결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러나 무죄판결 후에도 가해자 중 어느 누구도 책임을 인정하거나 사과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피해자 본인인 강기훈 씨와 강기훈 씨 가족 등 6명은 가해자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하여, 국가와 당시 수사책임자인 강신욱(당시 서울중앙지검 강력부 부장검사), 신상규(당시 강력부 수석검사, 사건 주임검사), 필적감정을 한 김형영(당시 국과수 감정인)을 공동피고로 2015년 11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총 31억원의 지급을 내용으로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그리고 1년 8개월만인 지난 7월 6일, 법원(서울중앙지방법원 제37민사부, 재판장 김춘호)은, 국가와 감정인에 대해서는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하지만, 사건의 핵심인 검사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는다고 판결했습니다.

 

1991년 강경대 열사 사망 이후, 정권 퇴진과 공안통치 종식을 바라는 시민들의 거센 요구를 반전시키기 위해 정권은 전대미문의 유서대필이라는 사건을 터뜨렸습니다. 정권이 한 청년에게 동료의 죽음을 부추긴 자살방조범이라는 누명을 씌우고, 위기를 모면한 것입니다. 검사는 그 시나리오의 핵심 행위자였습니다.

 

사건 초기부터 강력부 검사를 대거 투입한 후 유서대필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줄 수 있는 필적 자료들은 고의적으로 은폐했습니다. 강기훈에게 유리한 자료를 입수하고도 압수목록조차 기재하지 않고 서랍속에 감춰두었던 것은 그 대표적 행위입니다. 또한 강기훈과 참고인들에 대한 강압수사를 통해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았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결론을 정해놓은 꿰어맞춘 수사였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검사의 위법행위가 일부 인정된다고 하면서도 전체적으로 꿰어 맞춘 수사라는 핵심 쟁점은 가볍게 털어버렸습니다. 검사들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기교적 판결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법원이 과연 진실을 마주하려는 관심 자체가 있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1991년 강기훈 씨에게 유죄를 선고한 사법부와 2017년 사법부는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검찰의 가혹행위는 시효가 끝났다고 합니다.

 

원고들은 지금까지 이 사건은 우발적이거나, 감정인 한 사람의 개인적인 불법행위에 기인한 것이 아니고 정권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벌어진 것으로 그에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하고, 검찰 역시 예외가 될 수 없음을 강조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1심 법원은 수사가 가상의 유서대필범을 만들어내는 일련의 행위였다는 원고들의 주장을 무시하였고, 각 행위들을 개별적으로 나누어서 판단하였을 뿐 아니라, 검찰의 가혹행위는 인정하면서도 그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는 판단을 하였습니다.

 

또한 1심 판결은 이에 걸맞는 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으로 유서대필자로 지목되어 고통을 겪는 아들을 지켜보면서 극심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당하신 그의 부모에 대해 턱없이 적은 위자료(2,000만원)만을 인정했습니다.

 

강기훈 씨와 가족들은 현재 강기훈 씨가 간암 투병 중이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어려운 여건에서도 도저히 1심 판결을 인정할 수 없기에 항소를 결정하였습니다. 원고들의 주장은 제1심과 동일하지만 항소를 제기하면서 당초 청구했던 총 31억원보다 적은 19억 5,000만원을 청구하였습니다. 항소 제기 시 부담해야 하는 거액의 인지대 등을 감안하여 내린 불가피한 결정이었습니다.

 

 

국가의 항소 포기, 그러나 재판은 계속 될 것입니다.

 

한편, 국가의 소송을 수행한 검찰은 “국가는 재심 무죄판결이 확정돼 이에 따라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원심의 판단을 존중한다”면서 “분쟁의 조기 종식을 통한 신속한 권리구제 등을 고려해 항소를 포기했다”고 밝혔습니다.

 

국가기관의 불법행위에 대하여는 국가가 배상책임을 부담해야 하므로 국가가 이를 인정하고 항소를 포기한 것은 당연한 조치입니다. 그러나 원심은 국가책임을 국과수 감정인의 불법행위로 인한 부분으로 제한하였고, 검사의 불법행위로 인한 국가의 배상책임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로 인한 배상범위를 매우 좁게 인정하였을 뿐입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하여 원고들은 국가의 항소포기에도 불구하고 항소를 유지할 것입니다.

 

국가는 항소심에서 피항소인의 지위로 소송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원심에서 국가는 유서대필이 조작사건이라는 것을 부인하고 배상책임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와 같은 인권유린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항소심부터라도 국가는 이 사건이 정권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관여한 조작 사건이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진실을 밝혀야 할 의무는 다른 누구보다 국가에게 있습니다.

 

강기훈 씨와 가족들이 겪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정당한 판단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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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법 서선영 최현정 변호사가 공동대리인단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연합뉴스 기사에서 발췌하였습니다.